동양자수의 유래

동양자수의 유래
Origin of oriental embroidery

서양자수의 유래는 서기 3~4세기경으로 기록되어 있으나,동양자수(東洋刺繡)는  불교문화가 융성하였던 인도를 통해, 기원전(BC)1300년 중국하남성의 안양은 묘에서 출토된 자수(刺繡)와 그후 기원전 150년 전후로 추정되는 중국 호남성 장사시마왕퇴한묘(馬王堆漢墓)에서 출토된것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삼국시대에 일본으로 전해진 것으로 짐작할수 있다.

<일본자수연표>.를 보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고대자수 자수(刺繡)품이 출토되지 않아 문헌속에서 그 역사를 짐작해보는데,후한서의 동의전에는 그 당시 한반도에서는 마와 뽕으로 양잠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삼국지(三國志)부여전에서 수(繡)를 놓은 옷을 지어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권 제33잡지 제2기록, 통일신라시대에는 불교적 색채가 많이 가미된 자수가 성행했으며, 신라에 이어 고려시대에는 자수가 더욱 성행한 나머지 사회풍조가 너무 사치한다하여 이를 막는 국법이 제정되었을 정도였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 유교의 영향을 받아 15세기 궁에서는 신분과 권위를 가름 하는 흉배를 놓은 궁(宮)수와 사대부 이하 민간에서 사용된 민(民)수를 볼수 있다.당시 민수는 장수와 행복,다산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대담하고 화려함을 수로 표현하였다.

17세기에 이르러 숙종의 명으로 서민들도 혼례때 활옷을 입을 수 있었다.
동양자수의 천은 공단.명주 등 주로 비단을 사용하고, 실은 견사(絹絲)로서 실이 풀어진 상태와 꼬아진 상태를 기준으로 하는 푼사,반푼사,꼰사,깔깔사,금사,은사등을 사용하였고 지금까지 사용되어 오고 있다.

대표적인 문양으로는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부귀영화를 기원하는 목단, 가정의 안녕과 길(吉)을 기원하는 길상문양등 다양한 문양이 있으며, 동양적인 정서와 회화성을 표현한 감상용 병풍자수와 생활에 필요한 소품과 장식품을 만드는데 생활자수에 활용되며, 불교자수로 활용되었다.